[영화] 분노의 포도 - 소설과 영화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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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드, <분노의 포도>

 

물질 만능 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은 행운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1930년대와 지금이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도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가 내놓은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은 '누구든 재산이 조금 있으면 그 재산이 바로 그 인간이 되고', '오히려 자기 재산에 노예'가 되게 만든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청년 실업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경제 상황이 최악이다 할 정도로 어려운 실정이다. 매년 기업의 채용 경쟁률은 하늘이 무섭다 않고 치솟고 있고 '백수', '백조' 란 말이 자신의 직업처럼 되어버렸다. 물론 지금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합리적인 노동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며 일자리를 찾아 이 쪽, 저 쪽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 아직까지 3D 직종은 기피되고 복지정책으로 인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안타까움과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이 영화의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뭐가 옳은 것인지 모르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환상을 갖고 있으며 일자리만 얻는다면 쉽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배운 나로서는 겪지 않고서는 깨닫지 못하는 그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우리는 무언가를 알아서 지금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런 폐해 없이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본주의의 폐해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아직도 던져버리지 못한 심리적 열등감은 우리를 오키며 빨갱이로 만들고 존 삼촌처럼 스스로를 죄인이라 몰아넣는다. 나 하나도 먹고살기 바쁜 이 사회는 남편을, 형을 도망가게 하고 가족을 해체시킨다. 나는 어쩌면 우리가 로자샨의 사산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랑, 믿음과 같은 어떠한 정신적인 가치를 잃고 오직 물질적인 가치만으로 태어났다. 그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뮤리의 말처럼 무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아니, 영화보다는 소설에서 더욱더 등장인물들의 성격에 눈이 갔다. 나는 누구와 제일 가까울까, 나는 내가 그냥 자기 처지에 적응하며 희망만 읊는 톰의 어머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내가 받는 시급이 노동법에 턱없이 부족한 시급이라는 것과 그것을 신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케이시나 톰처럼 이에 적극적인 대항을 하지 않았다. 그다지 그 상황에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톰의 어머니처럼 그냥 그 상황에 적응해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내가 민주주의보다는 자본주의의 앞잡이가 된 보안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톰이나 케이시를 동경했고 나에게도 저런 용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미 돈의 지배를 받고 있고 매몰차게 외면하는 법도 알고 있다.

 

존 포드의 영화 <분노의 포도>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를 원작으로 한 것인데 아무래도 영화는 시간적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소설에서의 많은 부분들이 잘려졌다. 소설에서는 거북이나 고양이가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삭제되었다. 아마도 고양이와 거북이에게 연기를 시키는 게 어려웠을 것이고 또 영화에서 다루기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였다.

 

또한 영화에서는 '55 도로'라고 푯말 한 번 보여주고 넘어가지만 소설에서는 55 도로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되어있다. 이것 또한 소설에서는 부가 설명이 가능하지만 영화에서는 스토리 전개가 대부분 배우의 대사로 이어지기 때문에 불가능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또 영화에서 비중이 확 줄어든 인물들도 있다. 소설에서 윌슨 가족은 영화에서 완전 빠졌고 로자샨과 코니에 관한 얘기도 많이 빠졌으며 또한 영화에서는 어머니가 톰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만 많이 나와있지만 소설에서는 동생 앨이 자신의 형 톰에게 가지고 있는 일종의 동경심 비슷한 애정도 잘 그려져 있다. 영화는 소설보다 더욱더 주인공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많은 부분들을 자르다 보니 자칫 이어지는데 무리가 가는 부분의 내용을 수정한 것도 있었다. 소설에서는 농립부에서 나온 후 톰이 사람을 죽이고 가족이 도망가 목화를 따지만 영화에서는 사람을 죽이고 농립부로 가는 내용이다. 만약 소설대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농립부의 비중이 조금 작아졌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는 농립부를 결말 부분으로 미룸으로써 그 비중이 커진 것 같고 결말 부분이 간략해지고 깔끔해진 느낌이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는 부분이 여기저기 대화체로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그 부분을 마지막에 어머니가 운전대를 잡은 모습으로 하여 감정을 극대화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설에서의 너무 많은 부분이 빠져서 개인적으로는 무척 아쉬웠다. 나는 <분노의 포도>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모던 타임즈> 와 비교하게 되었다. <모던 타임즈>의 주인공은 기계의 고장 난 부속품처럼 지극히 산업화의 피해자 모습만을 띄고 있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습이 확연히 다루어지는 느낌이 드는 반면 <분노의 포도>에서는 자본주의의 가해자로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피해자이고 또한 주인공은 약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 마지막에 저항을 다짐함으로써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두 개의 작품 다 양떼들이 등장하는데 <모던 타임즈>는 시작 부분에 양 떼들이 등장함으로써 강한 상징을 남기는 반면 <분노의 포도>는 중간에 잠깐 등장함으로써 강한 상징을 남기진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또 두 개의 작품 다 감옥이 화제로 나옴으로써 사회의 비참함을 그려내고 있다.

 

<모던 타임즈>에서 떠남은 도망의 느낌이 들고 <분노의 포도>에서의 떠남은 도전의 느낌이 든다. 모든 게 끝나면 돌아온다는 톰은 돌아왔을까? 분명 톰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고물 자동차로 사막을 건너고 있다. 자기가 기른 곡식을 자기네들이 먹고 자기가 지은 집에서 자기가 사는 그들의 유토피아는 아직 오직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기죽을 필요는 없다. 이 영화는 비참함만을 그리고 있지 않다. 마지막에 "우린 영원해요, 우리가 민중이니까!"라고 외치는 톰의 엄마의 모습은 희망적이다. 우리는 민중이다. 그러므로 영원하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토록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유토피아에 가까워질 수 있다.

 

나는 이 마지막 부분을 보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언젠가 톰은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와서 다시 옛날처럼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루 한끼를 걱정하지 않게 된 것처럼 (아직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유토피아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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