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우리나라 만화 시장과 웹툰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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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가 경험한 국내 만화 시장의 변화에 대한 담론입니다.

<우리나라 만화 시장과 웹툰의 발전>

 

1900년대 후반 만화시장  대여점의 점령

1900년대 후반은 국내 만화 시장의 전성기였다. 기존의 만화를 사회악으로 여기거나 멸시하던 인식이 바뀌고, 대중 문화로서 당당하게 변모하는 시기였다. 만화 출판사가 큰돈을 벌었고, 또 많은 작품들도 등장했다. 이러한 전성기에 발맞춰 대여점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대여점은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만화와 친해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환경이었다. 이 시기를 지낸 어린이 중에 대여점을 이용하지 않은 사람은 실로 드물 것이다. 그리고 당시 만화책을 보며 자란 세대가 지금의 웹툰 시장을 이끌고 있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러나 당시 대여점 문화는 만화 시장의 발전을 저해하기도 했다. 당시 많은 만화가들이 불만을 가진 것으로 기억한다. 만화책 한 권이 팔렸을 때 작가가 받는 인세는 보편적으로 10%. 당시의 만화책 한 권의 가격은 3,000. 작가에게 가는 돈은 300원이었다. 대여점으로 인하여 한 권의 만화책을 여러 명이 빌려보는 문화였으므로 10명이 봤다고 하여 대여점을 이용한 이상 작가에게 가는 돈은 늘어나지 않았다.

반면 만화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의 경우 대여점 문화가 없었으므로 일본의 만화가는 쉽게 부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나는 사실 의문이다. 만약 당시 우리나라에 대여점 문화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만화 시장이 커질 수 있었을까? 90년대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많이 성장한 시기이긴 하나, 당시 부모 세대에게 만화책이 긍정적인 인식은 아니었다. 또한 97년 IMF 외환위기까지 오며,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말이나 아나바다 운동(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이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국내 상황은 만화 시장을 대여점이 점령할 수 있었던 환경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여점이 많이 생겨나면서 부정할 수 없는 악영향을 끼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공장 만화의 출현이다. [공장 만화는 사실 이전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대여점은 공장 만화의 주 판매대였다.] 많은 대여점의 등장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고정 고객의 증가였다. 이는 만화의 퀄리티와 상관없이 판매의 기본값을 책임졌다. 그러기에 퀄리티가 낮은 양산형 작품이 많아졌고, 이는 만화 시장의 질을 떨어트렸다.

2000년대 만화시장  대여점의 몰락과 종이 만화 시장의 침체

당시 충실하게 우리의 취미를 담당했던 대여점은 2000년대 들어서 몰락했다. 하나, 둘씩 문을 닫더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학생이 많은 몇몇 번화가에 만화카페가 있으나 이는 대여점이 있기 이전에 존재했던 만화방의 연속이며 대여점과는 성격이 다른 형태다. 이 역시도 사실 장사가 잘 되는지는 의문이다.

대여점의 몰락을 이끈 공신은 인터넷이었다. 90년대 통신 시절부터 온라인을 통해 장르 소설이 연재되었으나 사실 이는 한 동안 대여점과 함께 했다. 통신은 전화가 끊기고 요금 폭탄을 맞고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도 맞는 세트 구성이었기에 스스로 돈을 버는 사회인이 아니라면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에는 통신에서 인기 있던 소설을 출판사에서 책으로 내기 바빴고, 표지를 두르고 있는 띠지에는 ‘XX텔 조회수 **이란 문구도 흔했다. 출판된 책은 대여점에도 들어섰다. 이렇게 대여점과 통신은 잠시나마 공존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인터넷이 보급화 됐다. 길거리마다 전단지가 흩날렸고, 정액 요금만 내면 전화가 끊길 위험 없이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여점에 방문하지 않아도 집에서 편하게 불법 텍본과 스캔본을 볼 수 있었다. 이는 대여점의 몰락만 아니라 만화가의 생계까지 위협하는 행태였고, 이렇게 종이 만화 시장은 암흑기를 맞았다.

2000년대 만화 시장 - 웹툰의 등장과 각종 플랫폼의 성장

인터넷에 질 나쁜 스캔본이 떠돌 때, 사람들은 뷰어를 다운로드 받고 스캔본을 보면서도 이렇게 이야기했다.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것은 종이로 보는 것만 못하다.’ 그리고 수많은 만화가의 호소 로 사람들은 불법 유통물을 소비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당시 불법 복제와 유포는 만화 시장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보다 대중적이었던 음악 시장에서도 심각한 문제였다. 문화 다방면에서 이러한 불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호소가 이어졌다.] 이에 인터넷 정식 유통 채널이 생기기 시작했고 웹에 최적화된 만화 ‘웹툰’이 등장했다. [온라인에서 만화는 스크롤 형식의 웹툰과, 기존 종이 만화와 같은 페이지 형태(기존 종이 출판된 작품은 스캔본으로, 신작은 디지털 파일로 서비스 함)로 분류됐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웹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지금은 페이지 만화가 어색한 정도로 그 비중은 차이가 커지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만화 시장을 이끈다고 할 수 있는 ‘네이버 웹툰’은 가장 큰 규모의 플랫폼이다. ‘네이버 웹툰’은 무료 서비스로 인하여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침체되고 있던 우리나라 만화 시장에 활력을 되찾고 많은 만화가(웹툰 작가)를 발굴함으로써, 만화 지망생의 구원이 되었다. 지식인 서비스로 포털 1위를 탈환한 네이버는 웹툰 서비스로 2등과의 차이를 압도적으로 벌렸다. 네이버는 자본력을 기반으로 작가에게 높은 원고료와 광고비 등을 제시했고, 대부분의 웹툰 작가를 직접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다.

이후 뒤늦게 카카오가 시장에 합류하였다. 카카오 페이지는 초반에 웹툰, 웹소설을 주 컨텐츠로 하지 않았다. 만화를 매우 좋아하는 네이버 웹툰 대표(이자 네이버 웹툰을 현 위치까지 이끈 장본인)와 달리 카카오페이지의 대표는 만화를 비롯한 서브컬처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당시 큰 기대를 하지 않던 만화 서비스에서 압도적인 매출이 발생하게 되자, 카카오페이지는 무엇이 돈이 되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된다.

당시 카카오톡과 카카오스토리를 이용하여 사용자를 늘리던 카카오페이지는 카카오스토리의 주 사용층인 기혼 여성과 서울문화사 <하백의 신부>의 타깃이 맞아 떨어지면서 해당 작품으로 큰 매출을 보게 된다. [보통 킬링 컨텐츠는 소년만화에서 나오기 마련이고, 타 플랫폼에서는 <열혈강호>가 가장 큰 매출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카카오페이지에서만 <하백의 신부>가 <열혈강호>보다 큰 매출을 내게 됨으로써 카카오페이지는 주 타깃을 ‘여성’으로 삼게 된다. 실제로도 카카오페이지 초반에는 주 매출이 여성향 작품에서 나왔다. 이후 사용층이 넓어지면서 지금은 킬링 콘텐츠 <나 혼자만 레벨업>을 독점하기 이르렀다.]

카카오페이지는 시작부터 자본력이 탄탄했다. 네이버 웹툰이 경계할 정도로 카카오페이지는 공격적으로 시장을 점유했다. 카카오페이지는 독점 컨텐츠의 필요성을 느꼈으나 작가를 직접 관리할 여력은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출판사에 원고료를 지불하고 작품을 맡기는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이는 출판사에게는 굉장한 희소식이었다. 큰 출판사부터 작은 출판사까지 우후죽순 달려들었다. 이로써 카카오페이지는 독점 콘텐츠의 양은 챙길 수 있었으나 질은 아니었다. 카카오페이지가 책임지는 원고료를 출판사와 작가가 나눠 가졌다. 출판사는 본인들의 몫을 더 챙기기 위해 저렴한 원고료로 연재가 가능한 신인 작가를 선호했고 이는 결국 질 낮은 콘텐츠의 생산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카카오와 다음의 합병으로 카카오페이지는 상당한 퀄리티의 다음 웹툰을 확보한다. [다음 웹툰은 만화 출판사 출신의 PD가 오랜 기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만화에 애정과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었고 다음 웹툰을 키우겠다는 야망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카카오페이지는 그 자본력으로 독점 컨텐츠 확보와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갔다. 카카오페이지가 기획한 대여 기간의 연장(1일에서 3일로 연장), 기다리면 무료 등의 서비스는 네이버 웹툰도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에 네이버 웹툰이 만화 시장의 독보적인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카카오페이지와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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