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신화] 당금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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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 신화 <당금애기>로 본 여성 인식

<당금애기>

 

우리 집 거실장에는 항상 예수상과 성모 마리아상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예수상보다 큰 성모 마리아상을 보며 나는 때때로 의문을 가지곤 했다. 대체 성모 마리아가 한 일이 무엇인가? 나는 성모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낳았다는 것 외에 그녀의 능력에 대해 들어본 기억이 없다. 다만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하늘에 선택받은 여성인 것뿐 아닌가.

당금애기 역시 아무런 능력이 없다. 스님(시준)처럼 12개의 대문과 창고문을 발 몇 번 구르는 것으로 열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녀의 아들들처럼 뼈로 소를 만들거나 물 위를 걷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녀는 스님에 의해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했고 낳아 길렀을 뿐이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하늘에서 내려온 스님에 의해서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삼신이 된다. 그래서 그녀는 여성의 모성을 상징하는 어머니의 신으로 내려오고 있다.

여성이 아이를 낳는 일이란 그것만으로 위대하다 칭송받아 마땅한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여성의 능력이 그것뿐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아이를 낳는 일은 일생에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몇몇 남성들은 여자가 집에서 애 기르고 집안일이나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여성에게 아이를 낳는 일은 그것만으로 위대함과 동시에 여성의 능력을 그것만으로 제한시켜버린다.

<당금애기>에서는 여성의 생산적 가치가 부각되는 일면이 많이 나오는데 앞서 말한 것도 그러거니와 남성은 하늘, 여성은 땅이라는 상징이 많이 나온다. 우선 스님도 원래는 하늘나라에 있다가 따분하다 하여 땅으로 내려온 것이다. 즉 스님도 하늘 소속의 사람이다. 또한 당금애기의 가족이 하는 일을 보면 아버지는 하늘나라 일을, 어머니는 지하세계 일을 한다고 나온다. 또한 당금애기는 쌀톨 3개를 집어먹고 아이를 잉태하는데 쌀톨 역시 땅의 생산물, 즉 여성의 생산적 가치를 나타낸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아이들이 당금애기를 내버려두고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옛날 민담들을 떠올려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로 사는데 아이들이 어머니를 떠나 아버지를 찾아간다는 내용은 정말 많았던 것 같다. (당금애기에서는 다행히도 마지막에 어머니인 당금애기를 데려오지만 다른 민담 중에는 아이들이 아버지를 찾고 끝나는 내용도 많다. 홀로 남은 어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왜 하나같이 아버지를 찾아갈까? 당금애기에서 보면 아이들이 아버지를 찾아가 혈육을 증명하는 마지막 단계로 피와 피를 합쳐보는 것이 나온다. 이것은 지금까지 쭉 이어오고 있는 부계중심의 혈육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아야만 자신이 누구인지, 자아성찰을 이루게 된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기르지만 그것은 세월의 지남을 의미할 뿐 정신적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어머니를 떠나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이 어머니의 세계에서 아버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그리고 아버지의 세계에 안착하는 정신적 성장을 의미한다. 그래야 아버지도 모르는 것들이 잘난 체한다는 멸시를 받지 않고 진정한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알아야만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계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잉태는 단지 생산적이고 희생적인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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