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안톤 체호프, <벚꽃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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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동산> 인물 성향과 상징

안톤 체호프, <벚꽃동산>

줄거리

 1막은 상인 로빠힌과 두냐샤, 바랴 등이 벚꽃 동산의 지주인 라네프스가야 일행이 파리에서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1막에서 등장인물이 다 나오며 벚꽃 동산이 팔릴 위기에 있다는 상황을 보여준다. 굉장히 많은 등장인물이 1막에서 정신없이 나오기 때문에 (게다가 이름도 헷갈린다) 계속 앞장에 등장인물 소개를 봐가면서 봐야 했다.

1막에서는 벚꽃 동산과 함께 어린이 방도 소개되는데 벚꽃 동산과 어린이 방은 이 작품의 인물들의 성향을 보여주는 듯하다. 어디서 들은 말인데 사람의 심리를 유아심리, 어른 심리, 부모심리 이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고 한다. 유아 심리는 즉흥적이고 감상적인 것으로 어떠한 추상적인 그림 작품을 보았을 때, ‘색깔이 참 멋지다.’고 말하는 심리이다. 어른 심리는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어떠한 추상적인 그림 작품을 보았을 때, ‘이게 얼마짜리야?’라고 말하는 심리이다. 부모심리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훈계하려는 심리이고, 다른 하나는 보호하려는 심리로, 어떤 추상적인 그림 작품을 보았을 때, ‘이걸 그림이라고 그려놓은 거야?’라고 말하는 심리라고 한다.

여기서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이 심리대로 나눠보면 대부분 유아 심리에 있는 것 같다. 자신의 벚꽃 동산이 팔릴 위기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상적인 애착심에만 젖어 상황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계획이 없는 라네프스까야나, 허황적인 계획만 생각하는 가예프, 벚꽃 동산이 팔릴 위기에 있다는 큰 사건과는 상관없이 사랑에 빠져드는 두냐샤, 아냐 등 많은 인물들이 유아 심리를 보이고 있다. 일을 좋아하는 바랴나 노동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는 베쨔 역시도 벚꽃 동산이 팔릴 위기에 있다는 큰 사건에 대해서는 외면적이다. 가예프를 번번이 걱정하는 피르스는 부모심리로 보이고 벚꽃 동산이 팔릴 위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방안을 찾는 로빠힌만이 어른 심리로 보인다.

2막에서는 이들의 관심거리가 좀 더 구체적으로 나오는데 야외의 벤치에서 가정교사인 샤를로따는 자신이 살아온 내력을 이야기하고 에삐호도프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한다. 라네프스가야는 고향을 떠날 때까지의 사연과 심정, 파리에서의 생활을 들려주고 피르스는 노동해방령 당시의 추억을 말한다. 베쨔는 진리를 찾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며 노동자들이 더러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현실에 대해 비판한다. 아냐는 베쨔의 의견에 빠져들며 그를 사랑한다.

 

그리고 3막은 이 극의 전환점으로 로빠힌은 자신이 이 곳 영지를 구입하였음을 말한다. 제1막에서 이 영지는 경매에 부쳐질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음에도 로빠힌이 이 영지를 샀다는 사실은 예상치 못한 반전이다. 로빠힌 마저도 처음에는 이 영지를 살 의도는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단지 그의 경쟁자가 이 곳을 사게 될 위기가 닥치자 자신이 나선 것 뿐이다.

 

마지막 4막은 등장인물들이 여행길을 준비하며 이별을 고한다. 도끼 소리가 들려오며 모두 떠난 집에서 늙은 하인 피르스가 등장한다. 그 적막한 집에 홀로 남겨진 피르스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아무것도---"라는 말과 함께 움직일 줄을 모른다. 이 작품에서는 벚꽃 동산이 팔릴 위기에 있다는 큰 사건 외에 아주 많은 부차적인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만년 대학생 베쨔와 여지주의 딸 아냐 사이의 수줍은 밀애와, 이 집의 고용인인 불행의 사나이 에삐호도프, 순진하고 허영에 찬 하녀 두냐샤, 그리고 약아빠진 하인 야샤 사이의 삼각관계, 현실적인 노처녀 바랴와 로빠힌의 사랑, 이웃의 몰락한 지주 삐쉭의 경제문제, 가정교사인 샤를로따의 출생 내력과 경력, 또 라네프스까야의 과거 등이 정신없이 이야기된다.

벚꽃 동산의 상징과 희극성

벚꽃 동산은 각기 인물들에게 상징적으로 쓰이고 있다. 지식인을 대표하는 대학생 베쨔에게는 노예 제도와 억압의 상징으로, 여지주 라네프스까야에게는 그녀의 잃어버린 순수성과 아름답던 과거의 추억으로, 로빠힌에게는 전망 좋은 투자의 대상으로, 그리고 베쨔의 ‘이 러시아 전체가 우리의 동산이야.’라는 말처럼 러시아의 당시 상황을 상징하기도 한다. 

 

작가 안톤 체호프는 편지에서 이 작품을 "이 희곡은 연극 - 당시의 연극이란 말은 비극을 뜻했다. - 보다는 희극으로 썼다. 이 희곡의 어떤 부분에서는 차라리 익살극처럼 보이게 썼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체호프의 주장대로 이 작품에는 희극적인 요소와 익살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샤를로따가 카드마술을 부리고 물건과 사람을 없어지게 한다던지, 가예프의 과장과 당구 용어의 사용, 불운을 이끌고 다니는 에삐호도프, 몰락한 지주 삐쉭이 알약을 한꺼번에 먹고 오이를 한 바가지나 먹어치우고 니체의 학설을 인용하여 위조지폐 발행을 합리화하는 것, 베쨔가 흥분하여 층계에서 굴러떨어지는 것과 영지구입을 알리려는 로빠힌이 바랴의 몽둥이에 맞을 뻔 하는 것, 사랑하는 바랴를 부를 때 로빠힌이 소울음 흉내를 내는 것, 장면으로는 덧신을 찾고 가짜 샴페인으로 축배를 하는 것 등, 또한 작중 인물들의 연설조 독백의 희극성도 빼놓을 수 없다.

섬세하지도 심오하지도 않은 가예프의 책장과 자연에 대한 연설, 한 번도 일이라고는 해 본적도 없고 하려고도 하지 않는 베쨔가 노동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것, 털도 나지 않은 턱수염을 기른다는 것, 깨어진 온도계를 언급하는 등 이 작품은 수많은 많은 희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마냥 희극적인 것은 아니다. 라네프스까야는 금전문제에 신중하지 못하고 남녀관계에서도 어리석지만 그녀의 집과 동산에 관한 깊은 애착과 어린 아들의 죽음에 대한 그녀의 아픔은 비애를 안겨 준다. 가예프와 그녀가 마지막 부분 남들의 눈을 피해 부둥켜안고 우는 부분은 더욱 그러하다. 로빠힌마저도 바랴에게 마음속 깊은 사랑을 밝히려 하지만 결국은 못하게 되고, 86세의 하인 피르스가 귀먹고 노쇠한 가운데서 보여주는 충성과 모두가 떠난 자물쇠가 잠긴 집에 혼자 남은 쓸쓸한 모습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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