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찰리 채플린, <모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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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타임즈>를 통해 본 산업화와 인간

찰리 채플린, <모던 타임즈>

 

사람들은 양 떼처럼 도시로 몰려든다. 그리고 그들이 공장에서 기계처럼 일 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게 그려 놓았지만 왜인지 서글픈 느낌이 난다. 주인공은 걸음걸이 조차 기계 같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는 기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는 큰 기계다. 그리고 그 안의 양 떼처럼 몰려든 노동자들은 도시라는 큰 기계 안의 부속품인 것은 아닐까? 주인공은 정말 기계의 부속품처럼 이름도 없이 7번이라 불린다. 그는 기계 안에 살며 끊임없이 기계에게 학대당하는 부속품이다.

그가 미치는 부분은 정말 안타까웠다. 그는 도시라는 큰 기계에서 고장 나 제 멋대로 도는 부속품이 되었다. 그래서 쓰레기통(감옥)에 갇히지만 오히려 그는 거기서 휴식과 안정을 취한다. 지금 현재에도 우리나라에는 하루 종일 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택배를 나르다가 혹은 회사 컴퓨터 앞에서 정신을 잃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충분한 휴식과 안정은 지금 어디에,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영화를 보며 인상 깊었던 장면은 첫 번째로 주인공이 눈을 가린 채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부분이었다. 아슬아슬한 그 모습은 마치 그가 처음 공장에 있었던 모습 같았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굴러가는 롤러 앞에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는 상황의 심각성을 모른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눈을 뜨고 보기 시작했을 때 그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당황한다. 그것이 산업화인 것은 아닐까 난 생각했다. 절벽과 평지 사이에서 하는 아슬아슬한 곡예. 그 사이엔 절벽에 떨어진 수많은 사람들과 평지 사이에 자리 잡은 부르주아들이 있다.

두 번째 장면은 주인공이 거지소녀를 만나 상상하는 장면이었는데, 이 장면 속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젖소가 스스로 우유를 짜는 장면이었다. 젖소는 동물일까, 기계일까? 처음엔 주인공의 자유를 원하는 마음이 표현된 것이라 생각했으나, 주인공 역시 산업화라는 큰 기계 안의 부품일 뿐, 난 어쩌면 아담하고 행복해 보이는 그 장면들이 다 부속품들의 작은 집합인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주인공과 거지소녀가 떠나는 장면이다. 그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일까? 주인공은 행복한 생활을 위해 일자리를 갖길 원했다. 그건 구속이었던 걸까? 그래, 구속이라 치자.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이 진정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다,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구속이 없다면 자유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주인공과 거지 소녀가 떠나는 장면은 끝이 아니다. 시작일 뿐이다. 

노동자에게는 목소리가 없다. 목소리가 없다는 것은 자신의 주장과 의지를 나타낼 수 있는 무언가가 빠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좀 더 완벽한 기계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난 이 영화를 보면서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이 함께 들었다. 내가 본 저 기계 안에서 탈출한 이는 아무도 없다. 나도, 모두도 지금까지 이 큰 기계 안에 갇혀 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또한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이 기계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과 불만을 소리낼 수 있도록 교육받거나 교육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산업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가지고 온 폐해가 아픈것 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폐해 속에서 자유를 찾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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