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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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에서 자화상 찾기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내 인생의 전환기

20살, 풋풋하고 젊음과 활력이 넘칠 줄 알았던 시기였다. 대학 캠퍼스는 활기로 가득 차 있을 줄 알았고 웃음이 끊이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밖에는 안되었다. <어린 왕자>는 내가 초등학교 때 독후감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줄 때마다 접했던 작품이다. 보통 독후감을 써오라는 숙제를 1년에 한 번씩 내주었기 때문에 1년이란 뜸을 들이고 읽었던 <어린 왕자>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이 소설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읽어야 하는 소설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어린이보다 어른을 위한 필독 도서였다. 순수함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그 어른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현실이 버겁게 다가올 때 환상을 꿈꾼다. 고3 입시전쟁의 기간 속에서 우리는 어린 왕자가 찾았던 네 번째 별의 사업가처럼 한 가지 일에만 몰두했다. 아니, 우리는 현실로부터 일방적인, 획일화 된 주입식 교육에 몰두하기를 강요받았다. 그것은 사업가가 별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숫자로 대변되는 가치 없는 것에 매달려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자기 자신의 적성은 무시한 채 사회가 요구하는 1등 주의에 매달려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대학 캠퍼스의 환상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학생. 새로운 사람과의 사귐은 스스로를 몇 번이고 속이게 만들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간다는 것이 그런 이미지를 굳혀 내 본래의 모습은 떳떳하지 못한 것이 되어버렸고, 그 답답함을 토로해 보기도 전에 닥쳤던 가정사는 내 20대를 슬프게 물들였다. 이건 나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어렸을 적 집 안에서 보았던 창 밖의 풍경은 빽빽한 건물들과 줄지어선 자동차, 짙게 깔린 안개였다. 그 풍경을 보며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던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답답함으로 다가오는 경험은 마치 이 사회의 통과의례처럼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현실로서의 도피를 꿈꾼다. 대학에 막 들어간 신입생들은 자신들이 꿈꿔왔던 로맨틱 캠퍼스를 지켜내기 위해 억지로 사랑을 하고, 해가 지면 술집을 찾는다. 술잔을 넘기며 겉으로는 웃음을 꾸미지만 속으로는 울음을 삼켰던 기억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오늘도 갑자기 불연 듯 마음 속에 답답함이 피어오를 때, 그것을 잠재울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떠오르는 모든 것들이 해결책이 되지 못함을 안다. 그러나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 수가 없다. 당장 내일까지 제출해야 할 리포트를 두고도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대학을 나와서 무엇을 할 것인가? 차라리 지구를 정복하겠다는 허무맹랑한 꿈이라도 있던 옛 시절이 그립다. 지금의 나에겐 무엇을 하겠다는 절실한 꿈도 없고 거대한 포부도 없다. 당장 오늘 하루 해야 할 것, 내일 해야 할 것을 어디에선가 할당받지만 그것과 나의 미래를 연결시킬 수 없다. 오늘 할당받은 양을 버겁게 해 나가는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내 자화상을 어린 왕자가 들렸던 세 번째 별, 이런저런 목적도 없고 이유도 없고,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술에만 절어 사는 술꾼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것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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