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사무엘 베게트, <고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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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희극적 요소 찾기

사무엘 베게트, <고도를 기다리며>

비극이 신분이 높은 사람의 세드엔딩을 말하는 것이라면(물론 현대 비극은 그렇지 않지만) 희극은 신분이 낮은 사람의 해피엔딩을 말하는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그 신분을 알지는 못하지만 남이 먹다가 버린 뼈다귀를 주워 먹는다든지 하는 행동으로 보아 분명 보통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기억력은 형편없고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블라디미르는 에스트라공보다 조금 더 기억력이 좋고 자존심이 있으며 생각이 많은 듯 하지만 결단력 없이 고도를 기다리기만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행동은 분명 보통 사람들의 이하에 머물고 있다.

 

또한 이들로 하여금 희극적 요소를 띄게 만드는 것은 공간성에 있다. 무대 위에는 앙상한 나무 하나 덜렁 놓여져 있다. 이 나무는 하루 사이에 잎이 풍성하게 변한다. 이는 공간의 환상성을 가져다준다. 환상의 공간에 블라디미르, 에스트라공, 포조, 럭키, 소년이 찾아온다. 이들은 각자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름으로만 보아도 에스트라공은 프랑스의 이름이고 블라디미르는 러시아, 포조는 이탈리아, 럭키는 미국의 이름이다(개인적인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럭키라는 이름은 마치 우리나라의 ‘금자’같은 이름처럼 촌스럽고 희극적으로 느껴진다.). 이 작품은 이렇게 서로 다른 세계의 인물들은 한 자리에 데려다 놓음으로써 희극성을 발휘한다. 이들은 서로 각기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

블라디미르의 “있었지, 너 생각 안나냐? 하마터면 목을 맬 뻔했잖아? 그래 맞았어. 목-을-맬-뻔-했잖아. 그런데 네가 싫다고 했지. 생각 안 나냐?”라고 묻는 말에 에스트라공은 “너 꿈꾼 얘길 하는구나.”라고 말한다. 즉, 이들에게는 자신의 세계만이 진실이고 남의 세계는 기억도 안 날뿐더러 꿈이라 단정 짓는다. 이렇게 이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함으로써 말이 통하지 않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동문서답을 하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즉 부조리 등에 의한 비합리적인 구성에서 비극적인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다.

 

작품에서 이러한 희극적 모습은 과장과 놀람, 불일치와 반복으로 보여진다. 인물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들의 행동이 무척이나 과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두 속을 들여다보더니 내팽개치고 침을 뱉는 행동, 어떤 소리가 들렸을 때 몸이 굳은 채 귀를 기울이는 행동, 기울이다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행동 등은 매우 과장된 모습으로 우스꽝스럽게 나타난다. 또한 고도가 온다고 착각하고 보이는 그들의 행동은 매우 우스꽝스럽다. 그리고 대화의 불일치 역시 웃음을 자아내는데 1막에서 포조가 “내 이름은 포조라고 하오”라고 말을 했음에도 알아듣지 못하고 ‘보조’니 ‘푸조’니 ‘고조’니 하며 말장난을 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생각을 해봐야겠다는 거지”, “머리를 식히구”, “가족들하구 의논도 하구”, “친구들 하구도”, “지배인들 하구도”, “거래상들 하구도”, “자기 장부 하구도”, “은행통장 하구도” 하는 식의 이어가기 말장난도 많이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자꾸 자신이 했던 얘기를 까먹어 반복하는 것부터 1막과 2막의 반복 등 이 작품은 희극적인 모습을 계속 내비치고 있다.

어떤 수업시간에 드라마적 구조(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닥친 고난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 한 친구가 했던 소개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 기다림이 끝나는 것입니다. 나에게 닥친 고난은 기다림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기다리지 않기로 했습니다.”라고 소개를 한 학생인데 그 친구는 실제로 캐나다로 유학 간 후 연락이 두절된 남자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토록 기다림이라는 것은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큰 기다림부터 사소한 작은 기다림까지 기다림 속에서 살아나간다. 이처럼 기다림에서 살아나가고 그 기다림이 무척 지루하고 힘들다면 앞서 말한 친구처럼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하던가, 아니면 고도의 말을 전하러 온 소년을 쫓아 직접 고도를 찾아가 볼 수도 있는 노릇인데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그 어떠한 대책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이 기다림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러기에 더욱더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진다. 그들이 그 지루하고 힘든 기다림의 시간동안 하는 것은 기다림을 끝낼 계획이 아니라 그 기다리는 시간을 어떻게 잘 때워볼까 하는 고민이다. 그래서 그들은 말장난을 치고 과장하여 만남을 축하하고 인사하고, 욕하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고 모자를 바꿔 쓰며 놀아보기도 하고 포조와 럭키놀이를 하기도 한다. 이들의 이런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러나 그 뒤에는 ‘기다림’이 있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기다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 고도를 기다리며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기 때문에 희극적 결말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그 ‘기다림’의 과정이 결코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2021.02.20 - [명작 소개] - [희곡] <병자삼인>, <난파>, <금관의 예수>, <벚꽃동산>, <고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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