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고전 소설 <방한림전>
- 작품 탐구
- 2021. 3. 1.
조선 후기 여성 영웅 소설 <방한림전>
조선 후기 등장한 <방한림전>의 의미
조선 후기에는 우리 문학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한문 소설의 오랜 전통에서 국문소설의 창작으로 변했고 단편소설의 전통에서 장편소설의 창작으로 변하였다. 또 남성 독자층 중심에서 여성 독자층으로의 확대가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에 쓰인 작품들 가운데 영웅소설 중에서는 여성을 영웅으로 등장시킨 작품들이 눈에 띈다. 여성 영웅소설들은 대부분이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 체제에 대해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여성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당시 사회적 제도와 도덕관념 등에 구속당해온 여성들의 내면세계에서 표출된 남녀평등의식 및 자아실현을 표현하고 있다.
성리학적 사회질서가 완성되고 유교적 질서에 따라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극심했던 시기인 조선후기에 <방한림전> 이 작품의 존재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방한림전>은 조선 후기에 출현한 여성영웅소설로 38장의 한글 필사본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한림전>의 정확한 작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민 한림 부인 방 씨'가 방한림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 쓴 것이라는 기록이 나와있지만 그다지 신빙성은 없어 보인다. 방한림의 이야기가 현실과 동떨어진 감이 있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보기가 어렵고 작품의 배경이 조선조 초기 명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성혼'이라는 여성영웅소설사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모티브를 사용하여 남자를 배제하고,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펴 나가는 것을 보면 여성이 쓴 작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한 <방한림전>은 두 개의 이본이 있는데 <낙성전>과 <가심쌍원기봉>이 그것이다. 이 작품들은 그 필사 방식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데 <낙성전>은 방한림의 아들 낙성을 제목으로 내세움으로써 가장 남성주의적 시각에서 쓰인 작품이다. 또한 <방한림전>에서 나오는 '유모'를 '젖먹이는 계집'으로 나타내는 등 여성비하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방한림전>은 '민 한림 부인 방 씨'가 썼다고 할 만큼 문장이나 말투, 묘사에서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점 등을 생각해볼 때 <방한림전>은 가풍 있는 사대부 집안의 진보적인 여성이 썼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방한림전>은 이본들 중에서 가장 여성주의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방한림전>은 19세기에 쓰여진 소설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생산되고 유통되었던 남초(담배)라든가 근대적인 어휘가 사용되고 있으며 필사 연도가 19세기 말이기 때문이다. <방한림전>은 조선 후기 여성 영웅소설 중에서도 끝쯤에 쓰인 것으로 이전의 여성 영웅소설에서 느껴지는 여성의 한계를 많이 극복한 작품으로 보인다. <방한림전>은 남장여자와 동성혼을 통해 남성주의적인 사회와 결혼제도가 안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미래를 미리 알고 헤아린 듯한 여성문제 제기는 새로운 세계관과 여성관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여성학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방한림전> 감상
<방한림전>을 현대어번역본으로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말들이 많았다. 사실 처음에 <방한림전> 제목을 보았을 때 방이 성이고 한림이 이름인 줄 알았다. 내가 너무나도 조선시대의 문화라든지 사용된 단어들, 생활에 무지하였기 때문에 현대어로 번역했음에도 그런 쪽으로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용 자체는 매우 흥미로웠다. 요즘 쓰인 작품 중에서도 남장여자의 모티브는 흔하지 않다. 판타지 소설이나 옛날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간간히 볼 수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이유가 현대에 굳이 남장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장이라는 동기를 옛날이라는 그 시대적 배경에서 더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남장여자라는 모티브는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남장을 한 여성이 전쟁에서 승리를 한다거나 큰 업적을 이루는 것에 굉장한 재미를 느끼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여성 억압적 성격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동성결혼이라는 지금도 충격적인 모티브는 그것이 조선 후기에 쓰인 것이라고 생각해 볼 때 감탄이 나온다. 물론 요즘에 동성애에 관하여 다루는 작품들은 많지만 <방한림전>에서의 동성결혼을 동성애와 결부 지어 생각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방한림전>에서의 동성결혼은 방관주와 영혜빙이 철저히 자신들의 야망(?)을 위해 실현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한림전>은 분명 흥미로운 모티브를 가졌음에도 구성 자체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그 길이기 길지 않음에도 방관주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전 생애를 다 그리고 있고 그러다 보니 그녀가 이룬 전쟁에서의 승리라든지 그런 부분이 그저 짧게 설명될 뿐 부각되어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만약 <방한림전>을 현대 영상매체로 재구성한다면 나는 아마도 방관주를 영화 <잔다르크>처럼 그릴 것이다. 고전문학작품이라 함은 이해하기 어렵고 재미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방한림전>은 여성의 관점에서 더 흥미로운(작가도 여성으로 추정되지만 독자 역시 여성인)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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