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도영, <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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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태어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의 자화상

김도영, <82년생 김지영>

줄거리

1982년생 김지영은 한 가정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로 성실하게 그 역할을 다 하는 여성이다. 김지영은 남편을 내조하고, 육아와 집안일을 책임지는 보편적인 가정 주부로 보인다. 그러나 김지영에게는 문제가 하나 있다. 김지영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간혹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행동하고 말한다.

남편 정대현은 이 같은 사실을 차마 김지영이나 타인에게 알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그는 명절을 앞두고 이러한 김지영의 모습이 나올까 봐 '집에 가지 말까?' 묻지만 순종적인 며느리 김지영은 과거 상반되었던 남편의 태도를 지적할 뿐이다.

명절날, 대현은 설거지를 하는 등 지영의 부담을 덜고자 노력하지만 이는 오히려 지영을 더 눈치 보게 하는 상황으로 만든다. 다음 날 차례를 지낸 후 대현은 지영을 데리고 빨리 시댁을 나오려고 하지만 (자신의 시댁을 거친 후 친정에 온) 시누이네를 맞닥뜨리고 만다. 오순도순 거실에 모인 대현의 가족. 거기에 지영은 없다. 시누이가 먹을 차와 과일을 내오고 방에 가서 쉬라는 시어머니의 말에 결국 지영은 본인을 잃고 친정 엄마가 되어 행동한다.

이후 대현은 요즘 들어 조금 이상하다는 지영에게 조심스럽게 정신과 방문을 권유하지만 지영은 비싼 검사 비용(35만원)에 그냥 나오고 만다.

지영은 육아 중에 자주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되고, 때마침 과거 다니던 회사의 팀장님이 새로운 회사를 차린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지영은 함께 일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이고, 베이비시터가 구해지지 않자 대현은 육아휴직을 결심한다. 이 소식을 들은 대현의 엄마(지영의 시어머니)는 화를 내며 사돈(지영의 친정엄마)에게 전화하여 지영의 상태를 알리게 되고, 결국 대현은 지영에게 사실을 고백한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남성과 여성의 현실

영화는 전업주부로서 남편을 내조하고 시댁에 순종적인 김지영의 현재 모습과 꿈 많은 아이였던 과거의 모습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김지영이란 인물에게 닥친 문제를 보여준다. 그리고 보는 이로 하여금 김지영을 통해 나 자신, 혹은 이 시대의 여성을 떠올리도록 하고있다. 이 영화를 보고 공감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은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이거나 남성일 것이다. 김지영도 언급했듯이 여성은 출산 후 많은 변화를 겪는다. 그래서 같은 여성인데도 출산 전의 여성은 엄마가 된 여성을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김지영과 많은 부분이 닮았다. 나이도 비슷하고 태어난 가정이나 현재 상황 등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김지영과 나의 결정적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나는 김지영만큼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지영의 시어머니처럼 지영을 '유별나다'라고 느끼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유별이든 특별이든간에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보여주는 사회적 현실의 모습은 논란의 여지없이 공감할 만하다.

영화는 남성과 여성의 대비된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지영과 대현은 결혼 후 시댁의 성화에 자식 계획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영은 출산 후 자신의 삶은 많이 변할 것 같은데, 대현은 무엇이 변하냐고 묻는다. 이에 대현은 일찍 들어오고, 술도 못 마시고, 친구도 못 만난다며 많이 도와주겠다고 대답한다.

영화는 지영의 문제를 직면한 대현이 변화하는 모습으로 남성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차별적인 성관념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거 대현은 명절은 물론 부모님 생신이면 꼬박꼬박 만삭인 아내를 데리고 찾아뵙던 아들이다. 여성인 지영은 출산 후 경력 단절 등의 사회적 문제와 직면하지만 남성인 대현은 사교적 모임을 갖는 일이 줄어드는 등의 개인적 문제에 그친다. 이러한 대현이 지영에게 문제가 생긴 것을 인지한 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영화는 미처 대현이 신경 쓰지 못한 부분까지 보여준다. 아이 장난감을 소독하는 지영과 식사를 하고 있는 대현의 모습, 빨래를 개키는 지영과 식탁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대현, 지영에게 자신의 옷이 어딨는지 묻는 대현의 모습, 시댁에서 부엌에만 있는 지영과 친정에서 장인과 함께 소파에 앉아 있는 대현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지막까지도 일을 포기한 지영에게 '쉬어'라고 말하도록 한다.

영화는 뿌리 깊게 박혀있는 성 차별적인 관념을 대현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지영 또한 이러한 관념의 피해자다. 그녀 역시 전 회사 동료에게 남편이 많이 도와준다고 얘기했다가 한 소리 듣게 된다. '뭘 도와줘? 당연히 하는 거지', '육아는 나눌 수 있는 거 아니야?' 동료의 말은 이상적이나 비현실적이다. 이에 지영은 현실은 남편만큼 돈을 벌 수 없는 것이라고 답답한 현실을 자조하지만 나중에는 남편에게 '애 보는 거 쉬는 거 맞아?' 되물으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80년대 여성은 어른 세대의 차별적인 관념을 접하긴 하지만 대부분은 남성과 평등한 교육을 받고 똑같이 대학에 가고 공부를 한다. 사회에 나오게 되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장기 프로젝트에 배제되거나, 회의실 커피를 타는 등의 차별을 만날 수 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웬만한 남초 회사가 아니라면 이러한 차별이 일반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출산 후 회사에서 인정받고 승진을 하는 남성과, 집에서 육아를 하는 여성으로 나뉘는 것은 아직도 흔한 풍경이다. 꿈을 갖고 배웠던 전공은 육아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불안한 여성들은 자신을 찾고자 수학 문제집을 풀고 아르바이트 공고 앞을 서성이지만 사회적 시선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이 잘 키우는 것도 진짜 대단한 일이야.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 전업 주부인 지영(우리)은 중전과 무수리 비유에도 도저히 웃을 수 없다.

사회는 여성에게 어떠한 역할을 강요하는가? 이를 영화는 구시대적인 여성과 많은 남성의 입을 통해 보여준다. 능력을 인정받은 팀장에게 '남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라는 발언이나, '애 키운다고 막 하고 다니면 안 돼. 여자가 예뻐야지.', '가만히 있다가 시집이나 가.', '단정히 입고 다녀라. 아무에게나 웃지 마. 늘 살펴라. 못 피하면 못 피한 사람의 잘못이야.' 등 잘못된 여성 관념이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영화는 야한 사진을 돌려보는 남성 직원과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한 범죄 사건을 보여주며 같은 회사원인데 성적 피해자가 되는 여성의 모습과 그것을 소비하는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릴 적 지영을 쫓아온 남학생이나, 언니가 잡은 버버리 맨 등을 통해 성범죄에 노출되는 여성을 보여주고, 지영을 나무라는 아빠나, 언니를 창피하게 생각한 선생님, 사내 성교육을 들으면서도 무슨 목적이냐고 되묻는 직원의 모습을 통해 피해자인 여성에 대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태평한 여성은 아무도 없다. 뛰어난 능력으로 존경을 받는 팀장도 본인은 좋은 엄마가 아니라며 자조하고, 육아 휴직을 쓴 후 복직한 여직원은 아픈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회사에 데려온다. 5남매 중 가장 공부를 잘했던 지영의 엄마는 오빠들 뒷바라지를 위해 꿈을 포기하고, 지영의 언니는 집안 사정으로 원하지 않은 대학을 간다. 은행에서 사은품으로 주는 앞치마를 선물로 받은 지영은 기쁜 척을 해야 하고, 하원 시간에 늦을까 봐 얼굴이 빨개지도록 뛴다.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경력 단절인 자신이 갈 곳은 없고, 볼 일이 급해도 지하철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고 참는다.

'지영아, 너 얌전히 있지 마. 나대! 막 나대!'라는 엄마의 말과 달리 이러한 현실에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던 지영은 남편을 통해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듣고서야 변화한다. '나 뭐부터 하면 돼?'라고 묻는 지영은 자신의 감정을 글로 남기기 시작하고 '맘충'이라고 욕하는 사람에게 반발하는 등 불합리에 맞서기 시작한다.

감상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야 한다.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보다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소통을 방해하는 선입견과 편견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영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80년대 태어난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 가끔은 행복하기도 해요. 그런데 또 어떤 때는 어딘가 갇혀있는 기분이 들어요. 이 벽을 돌면 출구가 나올 것 같은데 다시 벽이고, 다른 길로 가도 다시 벽이고. 처음부터 출구가 없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 화가 나기도 하고. 근데 또 알겠어요. 사실은 다 제 잘못이에요. 다른 누군가는 출구를 찾았을 텐데 저는 그럴 능력이 없어서 낙오한 거예요." 지영의 말은 이러한 삶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꿈이 있었고 똑같이 공부를 하고 노력했는데 사회에 낙오된 기분.

물론 여성만이 피해자인 것도 아니고 여성이 피해자라고 해서 남성이 가해자인 것도 아니다. 육아휴직을 쓰면 승진에서 밀려나는 것은 남성도 마찬가지인 현실이다. 재밌게도 지영의 동료는 지영의 얼굴을 걱정하고, 대현의 동료는 대현의 얼굴을 걱정한다. 영화는 여성의 현실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것만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성별에 있어서 적대적인 반응이 나온다면 슬픈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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