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장 주네, <하녀들>
- 작품 탐구
- 2021. 2. 19.
<하녀들>에서 하녀의 상징적 의미
처음 작품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등장인물들이 횡설수설하는 게 <난파> 같기도 하고 <고도를 기다리며> 같기도 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자매들끼리의 연기였다는 것을 알고서는 보다 더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녀인 두 자매가 연극을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연극에서 클레르는 마담의 역할을 하고 솔랑주는 하녀이자 클레르의 역할을 한다. 마치 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하는 방법 중에 하나로 역할을 바꿔 연극을 해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연극을 해 보는 데에는 그 사람의 심리 상태를 보다 더 확실히 아는 효과가 있다. 작품 속에서 클레르와 솔랑주는 역할을 바꾸어 연기를 함으로써 이들의 숨겨진 욕구와 광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클레르가 마담의 역할을 함으로써 클레르가 마담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솔랑주, 즉 자기 자신 스스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님 앞에서 두 자매는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의 내심에는 마님을 동경하면서도 질투하고 증오하는 모습들이 마담 놀이를 통해 보이는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녀 2명과 마담, 이렇게 총 3명의 여성이다. 이 3명의 여성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눠진다. 부르주아 계급인 마담은 두 하녀들을 거느린 지배층이고 이 마담에게 소속되어 있는 두 하녀는 피지배층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들을 여성으로 설정함으로써 여성 특유의 질투심, 허영심 등을 이용하여 지배층에 눌린 피지배층의 숨겨진 욕구와 광기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에서 자매는 둘이지만 마담은 한 명이다. 즉 2:1의 배치구조이지만 마담에게는 뭇슈라는 애인이 있고 재산이 있고 화려한 생활이 있다. 반면 하녀인 그녀들에게는 거울을 보는 듯한, 자신과 똑같은 또 다른 그녀가 있을 뿐이다. 즉 한 명, 한 명이 화려한 지배층과 여러 명이 다 같이 구질구질한 피지배층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이 자매들이 합심하여 똘똘 뭉쳐져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충돌하고 갈등하며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또 자신들에게 잘 대해주는 마담에 대한 동경,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하는 자신들의 처지, 즉 자기 혐오감은 자신들이 못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마담에 대한 증오로 분출된다. 즉 마담을 동경하는 감정과 증오하는 감정,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감정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감정, 이 양가감정이 어지럽게 나타나며 두 자매는 서로 한 자아 안에서 충돌하듯 부딪친다.
클레르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자기와 같은 솔랑주를 몰아붙이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동정과 애착으로 솔랑주를 끌어안기도 하고 또 마담에 대한 동경으로 마담의 옷을 입고 마담의 흉내를 내지만, 마담의 대한 증오로 자신의 역을 하고 있는 솔랑주에게 어서 자신이자 마담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클레르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자신을 죽임으로써 마담을 죽이는 데에 성공한다.
그나마 처음에는 현실과 마담 놀이(그녀들의 환상, 그녀들이 꿈꾸는 세계)가 자명종 소리라든지, 전화벨 소리로 구분이 되었지만 마지막에서는 현실과 환상이 중첩되면서 그 구분이 모호해지고 현실의 클레르와 환상의 마담이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하녀들은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 하지만 내심으로는 마님, 자신들의 삶, 나아가 부당한 사회를 무섭게 증오하며 복수를 꿈꾼다.
마님의 흉내를 내는 클레르와 하녀의 역할을 하는 솔랑주의 모습은 두 자매의 일그러진 자아를 보여준다. 이 두 자매는 서로의 모습 속에서 자신들의 숨겨진 욕망을 본다. 장 주네는 이 두 자매와 마님을 통해서 당대의 모순을 극명하게 비추고 있다. 그 모순이란 전쟁 직후의 혼란한 사회상이며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대립되는 당대의 정치적 병리현상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되어진다. 마님과 나리는 중산층 계급의 허영과 이중심리를, 솔랑주와 클레르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자기 분열을 암시하는 것이다.
장 주네는 이 연극에서 세계에 대한 모든 부조리는 인간의 욕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회적 일탈행위가 자기부정의 모순으로, 사회 병리 현상으로 전도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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