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미하일 불가코프, <조야의 아파트>
- 작품 탐구
- 2021. 2. 19.
<조야의 아파트>에서 아파트가 하는 역할
아파트가 보여주는 사회상
<조야의 아파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무대 배경을 조야의 아파트로 하고 있다. 즉, 공간 배경이 되고 있는 조야의 아파트는 제목이 되어야 할 만큼 작품 내에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공간은 모든 사건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집’이라는 것은 하나의 가정을 지칭하기도 한다. 가정이란 사회를 이루는 최소한의 집단으로 ‘작은 사회’이며 이는 결코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보여주는 집단이다. 그러므로 ‘집’이라는 것은 사회상을 반영하는 공간이며, 동시에 사회상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마찬가지로 <조야의 아파트>에서 조야의 아파트도 그 사회상을 보여준다. 사회가 사회주의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아파트라는 공간도 그 책임이 달라지게 된다. 한 가정의 보금자리인 집이 전혀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쓰는 공동 공간으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또한 ‘아파트’라는 것은 산업혁명 시기에 노동자를 위한 타운하우스가 일반화되면서 생겨나게 된 형태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아파트가 중산층의 필수 공간이 되었고 미국 같은 경우는 하류층의 생활공간이라 하지만 어쨌든 아파트의 기원은 노동자를 위한 곳이었던 것이다. 일정한 평수의, 똑같은 구조의 집이 쌓아져 있는 아파트는 사회주의와 어딘가 닮아 보이지만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왜 상류층이었던 조야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구시가 아파트에서 살며 그렇다고 하여 사회주의에 완전히 물든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차별적인 생활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았을 때 ‘아파트’라는 공간을 일방적으로 사회주의와 연관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어쨌든 아파트는 사람이 많이 살기 때문에 부딪치기 쉬운 장소임은 틀림없다.
각 장면에서 아파트의 모습
1막에서 아파트는 조야와 그녀의 하녀인 마뉴쉬카가 살고 있는 장소였다.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이었던 이 곳은 그러나 할렐루야의 등장으로 변동의 움직임을 보인다. 주택위원회 대표인 할렐루야의 앞에서는 하녀인 마뉴쉬카가 조야의 조카딸이 되면서 주인과 하녀라는 계급적 관계가 아니라 가족의 관계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할렐루야와 조야의 아파트를 둘러싼 대화는,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사적사회와 공유를 주장하는 공식사회가 부딪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회가 변동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2막에서의 배경은 ‘조야의 아파트 거실이 의상실로 바뀌어 있다.’이다. 벽에는 마르크스 초상화가 걸려있고 재봉사가 일을 하고 있다. 1막에서 조야의 일상적인 공간이었던 아파트는 의상실이라는 작업공간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법적으로 노동을 하도록 허가받은 공간이다. 그러나 이 곳은 저녁 8시가 지나면 허가받은 노동자인 재단사와 재봉사가 떠나고 연미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이는 비밀스러운 장소가 된다. 밤이 되면 마르크스의 초상화를 떼어버리는 이 곳은 분명히 낮과는 상반되는 공간이다. 즉, 2막에서 조야의 아파트는 낮에는 의상실을 하며 지극히 공식세계에 속해 있는 모습이지만 밤에는 과거 귀족의 생활처럼 파티를 열고 노출이 심한 여자들이 나와 춤추는, 욕망이 드러나는 장소가 된다. 그리고 이 공간은 조야가 파블릭과 이 곳을 떠나기 위하여 자금을 모으는, 허가되지 않은 공간이기도 하다. 3막에서 아파트는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장소가 된다. 아파트의 정체는 탄로 나고 조야는 결국 모스크바를 떠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아파트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극은 막을 내린다. 사적과 공적이 부딪치는 장소였던 아파트는 결국 밤의 아파트에 동참했던, 공적으로 허가되지 않았던 사적 공간에 위치했던 사람들을 다 내보냄으로써 공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3막에서 아파트는 알라가 구시 몰래 비밀스러운 공간에 참여할 정도로, 또 케루빔이 살인사건을 일으킬 정도로 그들의 떠나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그들의 이 욕망은 강제적으로 공유를 해야 하는 공적 사회를 완전히 떠나 사유재산을 향한 사적 욕망인 것이다. 즉, 3막의 결론은 사적 공간의 패배로 향하지만 공적인 목적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사적욕망은 죽음까지도 불사하며 없어지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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